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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1월, 새 다이어리에 ‘올해는 꼭 해야지’라며 몇가지의 다짐을 써본다. 양산시청에서 새출발을 했던 새내기 공무원이 지난해 말 친절공무원이 되었다. 열정 넘쳤던 새내기 공무원의 초심(初心)을 되새기며 2018년 황금개띠 해 무술년(戊戌年)을 힘차게 시작한다.현정화 주무관은 양산시청 민원지적과에서 2016년 10월에 첫 근무를 시작했다. 민원지적과 토지거래 실거래신고담당에서 지적전산자료담당으로 자리를 옮기기 까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업무를 익히고 민원인을 응대하며 있었던 일들을 엮어 지난해 친절공무원에 도전했다. 공감과 경청의 힘현정화 주무관은 경상남도가 주최하는 ‘2017 BEST 친절 공무원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탁구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선수와 동명인 현 주무관은 세가지 에피소드를 세명의 상대선수와의 탁구 경기에 비유해 '친절 금메달리스트'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양산시청에서 만난 현정화 주무관첫 번째 에피소드의 민원인은 분양권을 알아보던 중 공인중개사가 다운계약을 제안했고, 불법이 아니냐는 민원인에게 중개사가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모욕을 당했다며 현 주무관에게 전화를 했다. 현 주무관에 민원인은 불법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며 하소연 했다. 민원인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더니 울먹이시며 토로하던 민원인이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끊었다. 현 주무관은 이때 ‘이게 공감과 경청의 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현 주무관은 두 번째 에피소드의 민원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시청 홈페이지에 칭찬글도 남겨주셨던 분이라고 말하며 “그 민원인은 실거래신고를 하고자 시청을 방문하셨는데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로워 몇 번이나 방문을 하셨다. 몇 번이나 방문하시면 민망할 수도 있는데 처음은 어렵기도 하고 헷갈린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티를 내지 않고 매번 똑같이 응대를 했더니 고맙다고 칭찬글을 남겨주었다.”고 말했다.세 번째 에피소드는 잊지 못할 칭찬을 들었던 경험이라고 현 주무관은 말했다. “실거래신고 시스템이 개편되면서 많은 중개사와 민원인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그 시기에 문의전화가 많이 왔는데 그때마다 차분하게 설명해드렸더니 어떤 민원인이 ‘다른데 전화를 해 보아도 양산시가 제일 친절하네요.‘라고 말씀해주신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뿌듯한 듯 말했다. 속시원하게 풀어내다.새내기 공무원 현정화 주무관은 아직 서툴다. 그렇지만 거침없다.“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다. 꼼꼼한 성격에 빨리 해달라는 민원인도 많았다. 날씨가 무덥던 한여름에 민원인이 항의전화가 와서 거칠게 항의를 하는데 손도 떨리고 눈물이 난 적이 있다.”면서 빨리 업무를 익히게 도움을 준 선배에게 감사함을 전했다.민원인들이 가진 공무원들에 대한 기대치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신중하게 만드는거 같다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서류가 쌓여있는 현 주무관의 업무책상“콘테스트는 경남의 시군들이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경쟁하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수고한 서로를 토닥여 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재치있게 풀어내는 속시원한 자리이기도 했다.”며 콘테스트가 공무원의 노고를 풀어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첫 임용하자말자 선배의 콘테스트를 응원하러 간적이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맡은 업무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민원인을 응대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발표하는 분들이 많았다. 경험이 부족함에도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기에 감투를 쓴 만큼 부담감이 크다.”면서 최우수상 소감을 전했다. “왕관의 무게라고 해야 할까. 왕관을 쓰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가짐과 말하는 것이 더 조심스럽다. 직원 간의 통화에서도 조심스러움이 생긴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크다.” 한결같이양산 통도사의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는 현 주무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차분함과 상반되는 낙동강 옆을 지상으로 달리는 지하철에서 바라본 양산 신도시는 현 주무관의 더 마음을 들뜨게 했다. 새로 지어지는 빌딩과 아파트를 보며 설레였지만 그만큼 업무량이 는다는 건 몰랐던 새내기 공무원이다.민원지적과에 근무하면서 ’조심스럽다‘는 현 주무관에게 ’공무원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질문했다. 현 주무관은 발표할 때 썼던 키워드를 언급하며 “이해, 인내하는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 똑같은걸 물어보아도 한결같이 답변해주는 자세와 처음이라 서툴러서,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민원인에 대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현 주무관은 얼마전 업무 관련 교육시간에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란 영화를 관람했다. 노년의 주인공이 공공기관에 질병수당을 신청하려고 하는데 인터넷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번번히 신청을 못하다가 결국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영화이다. 현 주무관은 “영화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어르신들은 일상생활이나 민원업무에 있어 어려움이 더 많다. 그래서 더 친절하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어르신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대하겠다고 말했다.‘2017 BEST 친절 공무원 콘테스트’에서 발표하는 모습/경남이야기 인터넷방송양산시청 1층 민원실에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오간다. 이곳에는 쾌활하고 밝은 현정화 주무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쾌활한 현 주무관은 공무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현 주무관은 ’우리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새내기이든 베테랑이든 공무원들도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황금빛 친절리스트현 주무관의 전공이었던 신문방송학과 밝은 에너지는 친절공무원이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를 첫 임용때부터 유심히 지켜본 백종진 과장은 양산시 대표로 그를 콘테스트에 추천하며 아낌없이 응원하고 지원했다. 현 주무관 맞은편 자리의 박승호 주무관은 선배로서 첫 임용때 부터 발벗고 새내기를 도왔다. 경혜원 계장 또한 작은 실수가 있더라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후배를 보듬었다. 꼼꼼하게 챙겨주셨던 주변 공무원에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현정화 주무관은 “앞으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며 민원인에게도 친절하게 응대하며 일하고 싶다. 모나지 않게 쭉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정과 초심(初心)을 잃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황금빛 인생을 응원한다.
18.01.24.지난해 창원시 용호동 가로수길에 그림 작업실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안타티코-귀니작업실’, 일러스트레이터 귀니(본명 정채린)작가의 작업실이다.몇해전 마산어시장 근처의 부림공예창작촌 ‘정휘공예연구소’에 있던 귀니의 작품을 본적이 있었다. 경남에서는 흔하지 않은 수채화 일러스트 작품이라 호기심을 불렀다. 공예연구소의 김정희 작가는 그때 귀니가 작가의 딸이라고 했다.그리고 얼마전 가로수길 근처로 ‘정휘공예연구소’가 이사를 왔다. ‘나의 것’을 시작하다.김정희 작가(이하 김 작가)는 15년 전까지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한솔교육에 다니며 회사에서 신임을 얻었다. 사회교육센터에 다니던 중 공예의 즐거움과 만남의 즐거움을 깨달아 가다 문득 ‘나의 것’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정희 작가와 정채린 작가“리폼공예로 시작했어요. 청바지 같은 의류에 저만의 그림을 그렸죠. 인기가 많아서 방송국 촬영도 했어요.”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김 작가는 포트폴리오를 회사에 내밀었다. 회사는 사직서를 제출한 김 작가를 반년이 넘도록 설득했지만 결심이 확고했다. 창원시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의 것’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현재 기업과 백화점, 학교 강사로 나서고 찾는 사람이 많을 만큼 자리 잡아 다방면에서 인정받고 있다.귀니 정채린 작가(이하 정 작가)는 수채화 작가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수년간 디자이너로 직장을 다녔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어느 순간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낙서를 SNS에 하나씩 올리면서 김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했다.정작가의 작업실은 돌아온 창원집의 방 책상 위 였다. 블로그를 열고 카페를 다니면서 원데이클래스를 열었다.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다. 자기개발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직접 검색을 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수강생 수도 꽤 된다.“이렇게 먹고 사는 것도 괜찮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라 좋았어요.”수강생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작업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로수길에 자리를 잡았다. 문을 연지 1년이 조금 넘었다.디자인 전공 선택에 엄마인 김 작가의 역할이 컸다. 엄마의 보조강사 역할을 하던 어느날 “엄마 나도 할래. 나도 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김 작가는 반대를 했다. 현재 정작가의 오빠가 미술대학 대학원에 대학중이다. 엄마는 오빠의 미술대학 입시 때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여기에 정 작가는 “오빠는 하게 하면서 나는 왜 못하게 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김작가는 승낙하기로 결정한다.“그 말을 듣는데 딱 맞는 말이다 싶은 거예요. 사실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제가 더 반대를 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 맞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했어요. “그건 저의 작전이였죠”김 작가는 오랜 경험의 노하우를, 정 작가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딸애에게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용호동으로 작업실을 옮기게 된 영향도 딸아이가 커요. 이곳 주변에는 작업실도 많고 젊은 친구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또 SNS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홍보나 그런면이 예전이랑 방식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저도 젊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작품을 들어 보이는 두 모녀가 닮았다.다투는 때도 있었다. 엄마의 요청에 억지로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본격적으로 엄마를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죠. 그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청소년기를 엄마와 보내면서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냐는 질문에 “딱히 없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엄마 덕에 경험하고 배운게 많으니 엄마를 따른다고 말했다.정채린 작가는 김작가의 딸이자 제자이다.“창작 활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 나이쯤 되면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딸아이도 그랬으면 해요.” 딸 이라며 쉽게 가르쳐 주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며 스타르타 식으로 밤 12시 까지도 정 작가를 가르쳤다. 정 작가를 자격증 따게 한 것도 딸애의 미래를 생각한 작전 이였다고 한다.김정희 작가는 ‘포항에 갔을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 했다. 포항의 한 백화점 행사 의뢰가 들어왔고 대게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정채린 작가는 동행을 결심했다. 출발 전 다투어 둘 사이가 서먹했지만 행사 후 대게를 먹고 신나게 놀며 회포를 풀었다고 말하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어보였다. 나는 엄마를 닮고 엄마는 나를 닮았다.두 모녀의 열정에는 가족들의 지지가 있다.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정 작가의 오빠는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같이 고민을 해주었다. 작업실을 결정할 때에는 아빠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 가족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의견을 나누고 서로를 지지해준다.김정희 작가의 섬유공예 작품과 정채린 작가의 일러스트 도자페인팅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정 작가는 엄마와 같은 분야에 있어 서로 도울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집이나 밖에서나 같이 의논 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며, 그렇지만 가끔은 쉬고 싶은데 그게 너무 없어서 그럴 땐 조금 그렇다고 말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김 작가는 “신랑에게 가장 고마워요. 큰 행사가 있을 때 항상 신랑이 먼저 생각나요. 그럴 때마다 문자로 ‘고마워’라고 말해요. 우리 아저씨에게 고맙단 말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두 사람은 새롭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김 작가는 새로 옮긴 작업실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그녀만의 색깔을 내고 싶다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며 누구나 여유롭게 즐기며 일상에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 작가도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민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자신의 전공분야인 일러스트와 접목시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김정희 작가와 정채린 작가는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섬유공예와 일러스트,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장점들이 조화를 이뤄내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서로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두 모녀의 미소는 참 많이 닮아 있다.
17.11.16.한국인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직업 1위 ‘소방관’.하루 24시간, 1년 365일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앞장서는 소방관, 그들의 에너지 원동력은 무엇일까. 3년 연속 경남소방기술경연대회 종합 우승지난 6월 7일부터 8일까지 양일간 의령군에서 개최된 2017년 경남소방기술경연대회에서 하동소방서는 화재진압분야, 구조분야, 구급분야를 섭렵하며 3년 연속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동소방서의 우승을 이끈 성호선 소방서장. 성 서장은이번 해 1월 취임했다.동료 대원과 테니스 대회에서 라켓을 휘두르며 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직원들 간의 벽을 먼저 허물고 가깝게 지낸다. 또한 현장에 적극 참여하는 등 열정 넘치는 그는 동료들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기도 하다. 처음 서장으로 부임한 그에게 동료 대원들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웠다. 자발적으로 훈련을 하고 꾸준한 훈련으로 호흡이 척척 맞는 모습이었다. 훈련은 실제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며 “이미 오랜기간 훈련을 통해 현장의 대원들은 서로를 믿게 되었습니다. 산불과 풍수해 같은 상황에서도 산림청 같은 협력 기관과 상호 적극 협조하고 군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이번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력자 역할로 대원들을 적극 지원한다는 성 서장은 그동안 고생하며 애쓰고 있는 대원들에게 종합 우승의 공을 돌렸다 신뢰로운가하동소방서는 107명의 대원이 있다. 적극적으로 현장에 참여하는 군민으로 구성된 690명의 소방의용대도 있다. 소방의용대가 타 시군보다 활성화되고 있고 스스로 긍지를 가지고 있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성호선 하동소방서장얼마전 한국남부발전 하동발전본부에서 있었던 재난 모의훈련으로 다수 사상자 구급대응 훈련을 전라도와 합동하여 전국 최초로 실시했다. 또한 화개면 켄싱턴리조트에서 무각본 합동소방훈련도 자체적으로 실시했다.현장 출동 시 매순간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소방대원들의 순간의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성 서장은 최근 그와 관련된 서적 책을 읽고 있다. 선택과 결정, 그 찰나의 순간에 성공과 실패사례가 쓰여진 책이다. 빠른시간 내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많다며 대원들에게도 적극 추천했다. “의사결정시 깨끗하고 명예스로운가, 신뢰로운가, 동료에게 신뢰로운가”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한다며 의사결정시 그 결정이 깨끗하고 명예로운가, 믿을만하고 신뢰로운 결정인가, 동료 대원들에게도 신뢰로운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인터뷰가 이루어진 서장실엔 를 비롯해 의사결정, 리더십, 교육에 대한 서적이 많았다. 1남 1녀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한 성 서장은 아이들과의 소통에도 관심이 많았다. 에스프레소 같은 존재경남 진주 출신의 성 서장의 아버지도 소방관 출신이다.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소방장학생에 지원하며 소방관이 되었다.중앙소방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소방 교육을 담당하며 일반인과 어린이들의 소방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경남도는 합천에 소방안전체험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내년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몸소 체험하며 익힌다면 실제 상황에서 적극 활용 할 수 있습니다.” 체험관에서는 지진, 풍수해, 화재, 시설안전, 응급처치, 방사능안전체험 등 다양한 재난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체험할 수 있다.체험 교육이 늘어나며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성 서장은 소방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께 ‘에스프레소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다.“에스프레소는 매우 씁니다. 하지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를 만들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존재죠. 소방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근하고 싶은 직장동료 대원과의 단체사진 제안에 성호선 서장과 직원들이 적극 임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성호성 서장(가운데)과 하동소방서 직원들대원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는 성 서장은 소방관은 군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만큼 동료 소방대원에 소방서가 ‘출근하고 싶은 직장’이길 바란다고 했다.소방관이라는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직장과 같이 마음맞는 동료는 업무능력을 향상시켜준다며 현장에 임하기 이전에 우선해야 할 것은 서로의 ‘신뢰’라며 동료애를 강조했다.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꼭“이건 꼭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고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집안에 작은 소화기가 있었다면 큰 화재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매우 안타깝습니다. 국가에서 주택용 소방시설인 주택용 화재경보기, 소화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모를 화재에 대비해 꼭 설치하셨으면 좋겠습니다.”하동소방서는 경남소방기술경연대회 종합 우승 상금으로 1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화재피해 복구지원을 위해 기증했다. 포털사이트에서 보았던 밤새 화재를 진압하고 재로 범벅이 된 방호복을 벗지도 못하고 까만 얼굴을 하고선 바닥에 기진맥진하여 누워 쉬던 소방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매 순간 영웅이 되는 그들에 박수를 보낸다.
17.06.30.저녁의 어둑한 가운데에서도 3월의 캠퍼스는 피어나고 있었다. 만학의 가운데서도 뜨거운 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손 글씨 강좌의 모습이 그랬다. 세대차이까지 부정할 순 없겠다만 수업 전 화선지를 몇 번이나 고쳐 피며 붓을 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은 새내기보단 적어도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서예가 허재 윤판기 선생이다. 선생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붓을 든 공무원'으로 유명했던 경남도청의 공무원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거슬러 가면, 한 기업의 노동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서예가이자 폰트개발자로 대학의 강단에 서있다. 마치 막이 하나씩 열리듯 펼쳐진 그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강의실에서 그를 만났다.선생님, 서예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큰아버지에게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시작했어요. 재능이 있었는지 그때부터 글 잘 쓰는 아이로 자랐어요. 상도 많이 받았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해 1년 가까이 한문서당을 다녔었어요. 근데 전화위복이라 느끼는 게, 그때 쌓은 실력 덕분으로 제가 서예특기생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그렇게 선생께선 학창시절에서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붓을 놓은 적이 없었는데요, 선생에게 서예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야말로 서예와 함께 학창시절부터 군대는 물론, 지금까지 오면서 한 번도 몽당붓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한결같이 한길을 걸어왔으니까 이제 서예는 취미를 뛰어넘어 생활 그 자체가 되었어요. 눈만 뜨면 일과는 서예로부터 시작된다 봐야죠. 예를 들면, 책표지 글씨, 비문, 현판, 문패, 상량문, 명패, 언론사와 출판. 그리고 창간 기념 축에서, 결혼 사성, 각종 상호 글씨 등 수없이 많은 생활서예 부탁과, 서예 강의자료 준비, 전국의 각종 대회 심사초빙, 제자들의 아호 작명, 각종 초대전 작품의 창작 등 서예로 가득합니다.'붓을 든 공무원'으로 유명하셨습니다. 공무원 생활 특유의 반듯함이 창작을 해야 하는 서예활동과 괴리는 없었나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공무원 생활에 있어서 창작활동은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서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 덕분에 감성이 살아있는 손글씨 컴퓨터 서체 한글 물결에, 동심에, 환웅 체, 낙동 강체와 광개토호태왕비체 한자폰트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벌써 그 폰트들을 개발한지 10여년이 지났는데요, 그래도 지금까지 대한민국 곳곳에서 제가 개발한 폰트가 사용되고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합니다. 또 이 일로 대한민국 최고공무원으로 선정되어, 전 행정자치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제30년의 공직 생활의 영광으로 남아 있죠.선생님의 작품에는 컬러가 들어가 화려함이 돋보입니다. 여백의 미로 대표되는 서예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영역을 세상에 펼쳐 보일 때만이 위대한 창작 노력의 평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 같은 글씨, 시각성이 두드러진 글씨, 색채가 들어간 글씨, 강조할 곳에 색상이 들어가 한 눈에 주목성을 높이거나, 내용을 연상할 수 있는 문자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품,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 등등으로 기존의 전통서예와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요소들이 많은 새로운 영역의 서예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늘 노력해왔어요.특히 표음문자인 한글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작업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 한글의 세계적인 문자에, 감성디자인의 옷을 입히면, 당당히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 윤판기 가슴으로 읽는 현대서예-하이그라피 책 출판과 함께, 고전 서예와 현대 서예를 융합한 ‘하이그라피(highgraphy)’라는 나만의 새로운 창작서체로 한글 문자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세계를 향해 뛰고 싶습니다.광개토호태왕비체, 물결체, 동심체 등 폰트도 개발하셨습니다. 캘리그라피와 달리 정형화된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인데, 힘들진 않으셨나요?네, 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광개토호태왕비체(廣開土好太王碑體)(KS5601기준 4888字) 손 글씨 한자 폰트를 개발했고, 한글 물결체 · 동심체 · 한웅체 ·낙동강체는 각각 2,350字를 폰트로 개발하여 산업현장과 디자인계의 호평을 받았죠. 정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씨는 문화, 예술, 정신, 혼이 담겨있는 그릇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우리 문화와 예술, 정신, 혼을 담는 그릇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래서 폰트를 개발했어요. 정말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서예로 쭉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일관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노동자로 첫 사회생활, 공무원으로 사는 생활,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교육자로서의 길. 이렇듯 그는 인생의 봉우리를 넘어가며 도전과 선택에 직면했다. 그런 그에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선생님의 걸어온 길을 보면 서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행복이었습니다. 내가 행복한 것만 바라봤던 거죠. 사실 흔히 생각하는 돈을 기준으로 보면 노동자로서 생활할 때가 수 입적인 면에서는 가장 윤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후의 공무원 때보다 몇 배의 금액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기준은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행복이고 거기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공무원 생활을 통해 제가 가진 장점들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 교육을 통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분야는 다르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소설가 헤밍웨이는 날마다 연필 열 자루가 닳도록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좋은 글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평생을 두고 듬뿍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 프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날마다 연필 열 자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글씨는 마치 그림이 되고 싶어하는 문자의 꿈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도 그랬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밝아 온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욕망이 그의 작품과 닮았다고. 그러면서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지금 행복하십니까.-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아마 제가 가장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17.03.31.정겨운 시장 인심이 가득한 시장, 어디선가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린다.하지웅 대표는 ‘젊은 총각’으로 통한다. 총각축*(창원 반림시장 내)을 운영하며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성공사례 강의를 하고, 창원 내 중학교 직업체험을 진행했고, 사회복지시설에 기부도 하고있다.시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총각’창원 내 재래시장에 있는 3개 지점을 관리하고 있는 하지웅 대표,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지만 사장님 소리가 낯설지 않다. 부산에서 2년간 쉬지않고 일하며 배워 몇해전 창원 명서시장에 1호점을 오픈했다.20대의 나이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총각축*'의 하지웅 대표“2년 동안 엄청 고생했다. 판매부터 매출관리, 직원관리까지 다 도맡았다. 이제 내 가게를 오픈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나왔다.” 고향 창원에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처음엔 기존 시장 상인들의 텃세가 있었다. 튀어보려고 노래도 크게 틀고 마이크를 들고 멘트도 했다. 주변상인들의 민원이 들어왔지만 신경쓰이지 않았다. 우선 가게가 잘 되어야 한단 생각뿐이었다. 내 가게 앞만 아니라 시장 골목을 다 청소했다. 인사도 열심히 하고 싹싹한 모습을 보이니 나중에는 다들 좋아해 주었다.”“그런 일? 제가 하고 싶은 일”“고등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공과대학에 지원했는데 불합격 했다. 좌절만 할 순 없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마트에서 야채, 과일, 즉석식품, 생선, 정육까지 다 해봤다. 그러다 군대를 갔는데 제대할 때가 되니 뭘 할지 막막했다.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후임을 앉혀놓고 공부도 해봤는데 나랑 맞지 않았다.”하 대표는 이전에 일하던 마트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정육코너가 가장 재밌었다. 고기를 손질하고 진열함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보이니 뿌듯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청년은 최연소 정직원이라는 직함도 달았었다.“힘들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일을 많이 시키더라.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라 꼭 하고 싶었다..”부모님도 처음에 반대를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만큼 하대표도 자신의 일에 애정이 많다.“가게를 오픈하고 얼마후 동네에서 친구 부모님을 뵈었다. 근황을 물으시길래 정육점을 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젊은나이에 왜 벌써부터 그런일’을 하냐고 하시더라. 그런일이 무엇인지 의아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에 자랑스러웠다. 그 친구는 아직도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하 대표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 많은 직업군 중에 좋아하고 잘하는 걸 빨리 찾은 듯 하다고 말했다.4쪽 짜리 발표자료작년 10월 서울에서 ‘제1회 축산·수의분야 취업·창업박람회’가 열렸다. 하지웅 대표는 창업성공사례로 강의를 했다.“강의자료로 A4 4장 분량을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컴퓨터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를 했더라. 사진도 넣고, 알록달록하게….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걸 준비해야하는지 몰랐다. 요즘은 사업계획서나 제안서, 마케팅 등 교육도 받으러 가고 공부를 하고 있다.”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하대 표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기를 추천했다.“가게를 시작할 때 경남신용보증재단에서 소상공인 대출을 받았다. 나중에 보니 금전적인 것 이외에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영업교육, 사업계획서 작성, 홍보 마케팅 방법알기 등 제도가 잘 되어 있더라. 특히 창업사관학교나 청년몰 사업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시작했을텐데 아쉽다. 혹시 창업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활용했으면 한다.”대출금을 다 갚았다고 말하며 웃었다.화이팅을 외치는 하지웅 대표(가운데)와 직원들백화점을 짓고 싶어요20대에 사장님이 되고 여러 분점을 가진 그의 꿈은 소박하다.“창원에서 가장 큰 ‘백화점’을 열고 싶다. 시장 안에 있는 작은 정육점이 아닌 100평짜리 씨끌벅적한 고기백화점. 그게 지금 꿈이다.”고기를 파는 ‘총각’은 조만간 ‘백화점’ 사장님이 될 것이다.
17.02.21.